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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수호지의 세계-

수호지란?

 

 


중국 명대(明代)의 장편 무협소설.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나관중(羅貫中)이 손질한 것이며 4대 기서(奇書) 중 하나. 수령인 송강(宋江)을 중심으로 108명의 유협(遊俠)들이 양산박(梁山 ; 山東省 壽張縣 남동) 산록의 호수가에 산채를 만들어 양산박(梁山泊)이라 일컬었으며, 조정의 부패를 통탄하고 관료들의 비행에 반항하여 민중의 갈채를 받는 이야기이다. 창조된 인물들의 이미지와 묘사된 성격이 매우 다채롭다.

《수호지》에서는 노지심(魯智深)·이규(李逵)·무송(武松) 등과 같은 신분이 낮은 정의한이나, 임충(林沖)·양지(楊志)·송강 등과 같은 지주출신자 또는 봉건정권을 섬긴 적이 있는 활발하고 용감한 사나이들이 중심인물이다. 필치는 거칠지만, 풍부한 색채와 어휘, 발랄한 표현으로 계급과 유형이 상이한 인물들을 그려내고, 이들 인물의 생활발전을 통하여 봉건통치집단의 암흑성과 서민의 비참한 생활, 용감한 투쟁 사상·감정을 나타내었다.

《수호지》의 줄거리는, 송(宋)·원(元) 무렵에 많은 민중·예능인·문인 등의 손으로 창조되었던 것을 시내암이 편찬한 것인데, 송대의 《선화유사(宣和遺事)》에는 수호의 36명의 영웅 이야기가 있고, 《계신잡지(癸辛雜識)》에 의하면 송말의 공성여( 聖與)가 36명의 화찬(畵讚)을 만들었다 하며, 《곡해총목제요(曲海總目堤要)》에 의하면 송나라의 화가 이숭(李嵩)이 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또 《취옹담록(醉翁談錄)》이나 원나라의 잡극(雜劇)에도 수호의 인물들이 나오며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고유(高儒)의 《백천서지(百川書誌)》에는 시내암이 쓰고 나관중이 편찬한 《충의(忠義) 수호지》 100권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일부를 삭제하고 편수한 것이 곽훈(郭勳)의 100 회본이며 이것이 조본(祖本)이 되어 여러 종류의 수호지가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 천계숭정(天啓崇禎) 연간의 양정견(楊定見)의 120 회본 《충의수호지전(全)》을 명말청초(明末淸初)에 김성탄(金聖嘆)이 다시 손질한 《제5재자서(第五才子書) 수호지》70회본이 유행하게 되었다.

《수호지》가 후일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명·청의 희곡 중에는 《수호지》에서 취재한 것이 많고, 《금병매(金甁梅)》는 부분적으로 확대하여 창조를 더하고 있으며, 《설악진전(說岳全傳)》 안의 일부 인물은 수호의 영웅들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또 진침(陳沈)은 《수호후전(後傳)》을 썼고, 유만춘(兪萬春)은 《결(結) 수호지》라고도 하는 《탕구지(蕩寇志)》를 지었다. 
쓴 나관중(羅貫中)과의 합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시내암이 쓴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호지》도 《삼국지》와 같이 여러 판본이 있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6세기초에 나온『천도외신서각본(天都外臣序刻本)』인 100회본이다. 그 외에 70회본, 120회본, 164회본이 있는데 그 중 120회본은 1600년경에 나온 것으로 100회본의 후반부를 더 늘인 것이다. 100회본을 보면 70회본까지는 관료들에 의해 억압받고 소외되어 울분을 간직한 백여덟명의 호걸들이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들기까지의 경로를 다루고 있다. 나머지 30회본은 송강(宋江)이 산채의 형제들을 이끌고 조정에 귀순해 대요국(大遼國)을 정벌한 후, 다시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시켜 공을 세우나 간신배들의 모함에 의해 독살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전호(田虎), 왕경(王慶)의 난을 평정한 얘기를 덧붙여 그 횟수를 늘인 것이 120회본이다. 그러나 순수 문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다른 어떤 판본보다 70회본까지 《수호지》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