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BC 369?~289?)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이름은 주(周)이며 송나라 출신이다.
소통을 통해 자연법칙에 거스르지 않는 생활과 어떠한 권위도 용납하지 않는 자유를 주장했다.
그의 주저인 『장자(莊子)』는 내편, 외편, 잡편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내편은 장자 본인이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서』<예문지>에는 『장자』가 전체 52편으로 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기』를 쓴 사마천은 <노장신한열전>에서 장자가 10여 만 언(言)을 썼다고 전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장자는 일종의 축약본이라고 할수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내편에 속하는 7편은 장자 본인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상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일종의 논문이라고 볼수 있다.
『장자』명언
1.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수도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 <지락(至樂)>
2. '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수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그 사육사도) 있는 그대로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옮고 그름'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키고, '천균(天鈞)'에 편안해 한다. 이를 일러 '양행(兩行)'이라고 한다.
- <제물론(齊物論)>
3. 도는 무엇에 가리어져 진실한 도와 거짓된 도의 구분이 생긴것인가? 말하기는 무엇에 가리어져 시비 판단이 생긴것일까? 우리가 어디로 가든 도가 부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든 말하기가 부정될 수 있겠는가? 도는 작은 것의 완성으로 가리어지고, 말하기는 화려한 수사들로 가리어진다. (...) 도는 걸어야 이루어지고(道行之而成), 외물들을 우리가 그렇게 말하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 <제물론(齊物論)>
4. 포정이라는 훌륭한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손을 갖다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을 디디고, 무릎을 구히고, 그 소리는 설컹설컹. 칼 쓰는 대로 설뚝설뚝. 완벽한 음률. 무곡 『상림(桑林)』에 맞춰 춤추는 것 같고, 악장 『경수(經首)』에 맞춰 율동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말했다.
"참, 훌륭하다.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포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온전한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영혼(神)으로 조우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은 쉬고, 영혼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귀에 칼을 밀어 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정말 본래의 모습에 따를 뿐, 아직 인대나 건을 베어 본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나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로 소를 수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넣어, 칼이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근육과 뼈가 닿은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 조심합니다. 시선은 하는 일에만 멈추고, 움직임은 느려집니다. 칼을 극히 미묘하게 놀리면 뼈와 살이 툭하고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같습니다. 칼을 듣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갈무리를 합니다."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이 무엇인지 터득했노라."
-<양생주(養生主)>
5. 장자가 죽으려고 할 때, 제자들은 그에게 후한 장례식을 치러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속 관과 겉 관으로 생각하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삼으며, 별들을 구슬로 생각하고 만물들을 장례 예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장예 용품에 어찌 빠진 것이 있겠느냐? 너희들은 이것에 무엇을 추가하려고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는 말했다.
"땅 위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에게 먹힐 것이고, 땅 아래에서는 나는 개미와 땅강아지에게 먹힐 것이다.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 개미와 땅강아지에게 주려고 하니,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 편파적이냐!"
-<열어구(列禦寇)>
6.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알려고 함(知)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쫓으면 위험하다. 그런데도(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앎(知)을 갈구한다면 더욱 위험할 것이다. 선(善)을 위한다면 명성(名)을 가까히 하지 말고, 악(惡)을 위한다면 형벌을 가까히 하지 마라. 중도(督)에 따라 떳떳하면 이로써 몸을 보존하고, 삶(生)을 온전히 하며, 어버이를 봉양하고, 주어진 인생을 다 살게 된다.
-<양생주(養生主)>
7. 그대는 사마귀를 알지 못하는가? 그 앞다리를 휘둘러 써 수레바퀴에 맞서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경계하고 삼가하라. 그대의 빼어남을 자랑하고 과시(犯)하면 위태로워진다.
그대는 호랑이 조련사를 알지 못하는가? 감히 살아있는 먹이를 주지 않음은 그것을 죽이고 성내기 때문이며, 온전한 먹이를 주지 않음은 그것을 찢으려고 성내기 때문이다. (조련사가)먹이를 줄때와 안줄때를 알고 성난 마음을 알게되면(達) 호랑이는 인간이 서로 다른 종족(類)이라도 (조련사에게)순해진다. 때문에 호랑이가 조련사를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기분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인간세(人間世)>
8.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왕(帝)을 숙(儵)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왕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왕을 혼돈(渾沌)이라 한다. 숙과 홀이 어느날 혼돈의 나라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에게 보답하고자 단둘이 의논하였다.
"인간들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홀로 있지 않는다. 시험삼아 뚫어보자."
그리하여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었는데, 7일째 되는 날 혼돈은 죽어버렸다.
-<응제왕(應帝王)>
9. 자여와 자상은 서로 친구였다. 마침 장마가 일어나 열흘동안 계속되었다. 자여가 말하기를,
"자상이 아마도 병이 났을거 같구나"
그래서 밥을 싸들고 자상에게 갔는데, 자상의 집밖에 이르자 노래 하듯 곡소리와 거문고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힘겨운 소리로 시가 읆어지자, 자여가 들어가 자상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그런 소리를 내는가?"
자상이 말하길,
"나는 나에게 이런 불행한 상황을 준 사람을 생각해봤는데 전혀 알수 없었네. 어찌 내 부모가 나의 가난을 바라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지 않고, 땅도 사사로이 싣지 않으니, 천지가 어찌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겠는가! 이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 보였지만 찾지 못하였네. 그러니 이런 지경이 된건 아마도 운명이겠지."
-<대종사(大宗師)>
10. 북쪽의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살았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다. 그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수 없었다. 곤이 어느날 갑자기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이 붕(鵬)이다. 붕의 등은 또한 몇 천리인지 알수 없었다. 붕이 한번 크게 날개를 펴면 창공의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붕은 바다가 움직이면(태풍이 불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 대저 물의 고임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이 없다. 한잔의 물을 웅덩이에 부어 넣으면 지푸라기는 배가 되지만 잔을 놓으면 땅에 닿는다. 그것은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람이 쌓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감당할 수 없다. 때문에 9만리 장천을 올라가야 바람이 날개 밑에 그만큼 쌓이게 되고 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하늘을 등에 지며 남쪽 바다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매미와 잡새는 붕의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날아도 나무위에 머물고, 때로는 땅바닥에 떨어지는데 저놈은 왜 저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가?"
가까운 들판에 나가는 사람은 세 끼의 밥만 먹고 갔다와도 배가 고프지 않지만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양식을 준비한다.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큰 일을 할 사람은 큰 준비가 필요한데, 매미와 잡새가 그 이치를 어찌 알겠는가.
-<소요유(逍遙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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