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드 훗사르(Winged Hussar)는 1503년 폴란드 의회 <세임>에서 창설된 왕실 근위 기병대이다.1514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과 러시아가 싸운 오르샤 전투에서 부터 폴란드군의 최정예 부대로 활약하였다. 트란실바니아 대공출신 국왕인 스테판 바토리 때에는 기존의 중기병들보다 훗사르들의 수를 증가 시켰고 개혁의 핵심인 "중무장 경기병"이 실현화 되었다.
훗사르들은 개혁으로 인해 더욱 강력해져 폴란드 주변의 국가들을 모두 무릎 꿇게 만들었다. 1603년 스웨덴 국왕 카를 9세의 군대를 쳐부수었고, 7년뒤 러시아 원정에서는 스웨덴-러시아 연합군을 쿠쉰에서 격파하고 모스크바를 함락시켰다.
1620년 체초롱 전투에서는 1만 5천명의 오스만 투르크 기병대를 단 300기의 돌격으로써 진영으로 쫒아보냈다. 1621년 코침 전투에서는 공성전에서 방벽을 넘어 침입한 예니체리 보병대를 격파하고 훗사르의 호적수인 시파히 기병대와도 호각을 이루었다.
윙드 훗사르의 주요전술은 일반적인 서양 기병들이 보여주는 랜스에 의한 충격전, 보조무기를 이용한 백병전, 혹은 권총을 쏘면서 돌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랜스돌격과 권총돌격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했으나 주로 랜스 돌격 후 백병전으로 가는 양상을 띄었다.
윙드 훗사르의 랜스인 코피아(Kopia)는 대체로 4.5m ~ 5.5m 정도되며 구간마다 둥근 공이 있었고 속이 비어 다른 랜스들 보다 내구력이 높지 못했으나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다. 훗사르들 사이에서는 코피아가 부러지지 않으면 전투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왕따시키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코피아의 창끝에는 홍백의 군기가 달렸는데 적군을 어지럽게 하는 심리효과를 일으켰다.
근거리에선 세이버와 팔라쉬, 에스토크 같은 검을 사용하였다. 세이버는 주로 보병이나 경무장 기병, 팔라쉬는 중무장 기병을 상대하는데 사용하였는데 기병들의 무장이 경량화되면서 가장 긴 무기인 에스토크의 사용빈도가 증가하였다. 초기 훗사르들은 방패를 사용하였으나 스테판 바토리의 개혁으로 사용빈도가 줄어들었고 17세기에 들어서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권총 또한 개혁이후 랜스에 비해 사용빈도가 적었고 후기에 가서는 랜스 돌격 후 권총을 꺼내 사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은 서민에서 차출된 훗사르들의 무기였고, 귀족출신 훗사르들은 랜스 챠징 후 망치와 도끼를 사용하였다.
훗사르의 영광은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가 국왕이 되면서 끝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초기 훗사르들에 의해 애를 먹은 아돌프는 몇년간의 군제 개혁 끝에 발호프에서 윙드 훗사르를 야전에서 패배시키고 폴란드의 명장 코니에츠폴스키가 이끄는 훗사르들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회니히펠테 전투에서 또다시 훗사르들의 공격으로 패배하였다.
그러나 몰락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코니에츠폴스키가 죽자, 폴란드는 강대국들에 의해 시달림을 받게 되었고 폴란드 치하 코사크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기위해 출격한 훗사르들은 화약무기로 무장한 코사크 보병대에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다 대패하였다.
윙드 훗사르는 1683년 오스만 투르크를 상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싸워 승리한 이후 그 역활과 무장이 점점 축소되었고 결국 1775년 정식으로 해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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