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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전사들>

북관유적도첩 ~역사에 빛날 위대한 전쟁사~


 


북관유적도첩은 

고려 예종때 부터 조선 선조때까지 북관(北關-함경도)지역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18세기때 제작되었다. 

총 8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척경입비도>-





고려 예종 때의 일이다. 

평장사 윤관이 지추밀원사 오연총과 각각 행원대원수, 부원수로 임명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북관지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함주, 복주, 길주, 웅주, 영주, 공험진이 6성을 쌓았고

마침내 선춘령에 '고려지경'이란 비석을 세웠다.





 


2. -<야연사준도>-






조선 세종때 일이다.

김종서가 여진족을 물리치고 6진을 개척하여 

국경을 넓히고 도순문찰리사로 있을 때 였다.

하루는 장졸들과 함께 술과 잔치로 야간연회를 하던 중,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중앙의 큰 술병에 꽂혔다.

이에 장졸들은 놀라 겁을 먹었지만

김종서는 간사한 이의 술책이라 여기고 침착하게 연회를 진행하여 마쳤다.








3. -<야전부시도>-





세조 때 일이다.

함경도 도제찰사 신숙주가 여진족과 싸우던 때이다.

여진족이 야간에 신숙주의 진영을 공격하자 

신숙주는 당황하지 않고 누운 상태로 막료를 불러

적군을 위로하는 시를 한수 지어주었다.








4. -<출기파적도>-





세조 때 일이다.

길주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회령부사 어유소를 좌대장으로 삼아 토벌하게 하였다. 

어유소는 홍원, 북청, 만령 등에서 싸웠는데 

특히 만령은 천혜의 자연요새로 아군이 공격하기 어려웠다.

이에 어유소는 정예군을 차출해 풀과 구분하기 어렵게 푸른 옷을 입히고

작은 배에 태워 벼랑을 올라 적의 배후를 치게 하였다.

양방향에서 협공이 이어지니 적은 곧 무너졌다.








5. -<등림영회도>-






세조 때 일이다.

약관의 나이에 총대장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남이는 적개공신 1등에 올랐다.

남이는 난을 평정하고 돌아오던 중 백두산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백두산 돌을 칼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을 말 먹여 없앤다.

남자가 20살에 세상을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白头山石磨刀尽 

豆满江水饮马无 

男儿二十未平国 

後世谁称大丈夫 







6. -<일전해위도>-






조선 선조 때 일이다.

신립이 온성부사로 재직하던 중 두만강변의 여진족이

경원도호부의 훈융진을 포위하고 장성문을 철거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이에 신립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화살 한 대로 적의 대장을 쏘아 죽였다.

대장이 쓰러진 여진족은 신립의 얼굴을 알아보고 모두 달아나 버렸다.








7. -<수책거적도>-






조선 선조 때 일이다.

경흥도호부 순찰사인 정언신이 녹둔도에 둔전을 설치하였는데

당시 조산만호로 있던 이순신이 이를 관리하였다.

가을이 되자 여진족이 침입하여 목책을 따라 노략질을 하자 이순신이 이에 맞섰다.

여진족이 목책을 공격했는데,

목책을 지키는 병사들이 모두 들에 나가있어 방어가기가 어려웠다.

 여진족 추장 마니응개가 목책안으로 들어오려하자

이를 쏘아 죽이니 여진족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이때를 노려 공격을 하니 

여진족은 대패하고 붙잡혀간 가축과 농민을 구했다.








8. -<창의토왜도>-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군이 함경도로 들어오니 국경인, 국세필 등이 반란을 일으켜 

왜군에 가담하여 그 세를 넓히고 있었다.

이에 북평사 정문부는 숨어있다가 이붕수가 의병을 일으키려하니 

그의 집에 찾아가 강문우, 지달원, 최배천 등과 합세해 

창의대장으로 300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부성에 있는 국세필을 달래고 의병을 성안에 끌어들이고 

성 남쪽에서 노략질하던 왜군을 물리쳤다.

이후 정문부는 국세필과 그 일당들을 사로잡아 참수하고 성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